걸어서 제주도 한바퀴

계획

처음에는 국토대장정이였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걸어서 가는 20박 21일의 여정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정상 너무 길고 날씨또한 7월의 무더움을 견뎌내기 힘들것 같아 제주도로 방향을 틀고 계획을 잡았다.

계획은 3월에 비행기를 예매하여 시작되었다. 원래 다니던 회사의 계약기간만료가 6월30일이였기에, 퇴사 후 바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8박9일동안 제주도 한바퀴를 걷기로 친구와 약속을 하고 그 뒤에 일정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숙소 예약은 그날 컨디션에 따라 조절해야될 것 같아 첫날을 공항근처에서 예약해두고 나머지는 예약도 안하고 출발)

여행을 시작하기전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보니 무조건 가방을 가볍게 가져가야 된다는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압축을 해서 가져갔고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 반팔, 반바지, 속옷 두세트 (그런데 당일날 빨래를 했었어서 사실 한세트만 있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 스피커 (필수..!)
  • 보조배터리 / 충전기
  • 세면도구 (로션, 칫솔 등)
  • 우비
  • 깃발 (낭만 원툴)

정말 이정도만 챙겨서 갔었다. 혹시몰라서 긴바지도 준비했었었는데, 2일차에서 조금이라도 가방 무게를 줄여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숙소에서 버리고 갔다… ㅜ

그렇게 정말 낭만밖에 없는 바보들의 걸어서 제주도 한바퀴가 시작됐다.

위풍당당한 첫날 image

일정

일정은 제주도 환상 자전거 종주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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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근처인 용두암으로 시작해서 다시 용두암으로 돌아오는 7박 8일 코스로 시작했다.

일정을 하루하루 적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별로 작성해보려고 한다.

올레길의 지옥

첫날에는 체력이 너무 많아서 잘못된 선택을 해버렸다. 바로 올레길을 따라가버린것. 우선 환상 자전거길을 아래와 같이 파란색 선으로 제주도 한바퀴에 걸쳐 그려져 있어 쭉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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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날에 힘이 너무 넘치는 바람에 아스팔트길이 아닌 올레길을 가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아래 사진에서 빨간색 선이 자전거길이고 파란색 선이 올레길 18번이다. 지도로만 보았을 때는, 돌아가지도 않고 풍경도 훨씬 좋을것이라 예상이 되어 이구간을 올레길로 따라가보았다. image

풍경자체는 사진처럼 너무 좋았지만 비온다음날이였기에, 곳곳에 웅덩이(함정)가 숨어 있었고, 신발은 진흙탕이 되어 버리고 계단 혹은 언덕이 중간에 너무 많아 다음날 허벅지 및 온 하체가 너무 아팠다. 그 뒤로는 정말 올레길을 쳐다도 보지 않고 환상 자전거길만 따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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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image

뜨거운날

우리는 날씨복을 정말 타고났었다. 출발할때만 해도 제주도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올 예정에 중간중간에 뇌우까지 껴있어서 정말 비가 많이 온다면 계획을 취소하자는 이야기 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정말 부슬부슬 오는 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비가온날은 없었고, 오히려 맑은 날이 이틀정도 존재했었다. 처음에는 맑은날에 많이 걷자, 혹은 이때 버닝을 해서 40km를 걸어야 된다. 이런말을 했었는데, 막상 맑은 날은 지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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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주도 한바퀴를 한다고 했었을때 사람들이 제일 많이한 걱정이긴 했다. 7월에 더우면 어떡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바다 옆이니까 시원하겠지 이거였다. 하지만 환상 자전거길은 항상 바다 옆에 있는것도 아니였고 정말 너무너무 더웠다. 해가 너무 강렬해서 목은 두시간에 한번씩 선크림을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빨갛게 익어버렸고 내 친구는 상남자답게 다리에는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더니 정말 삼겹살마냥 구워져버렸다. 정말 살면서 이렇게 경계가 뚜렷한 피부는 처음봤다… image

바선생 두둥등장

3일차에 우리는 지도를 보고 일정에 대한 조율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걷는 시간으로는 딱 7일인데 이런 페이스로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한것. 그래서 무조건 35km를 맞추기로 결정을 하고 숙소 예약을 하였더니 어느날 외진곳에서 숙소를 잡아야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외진곳이다 보니 펜션밖에 없었고 가격도 비쌌지만, 일정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예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3일차를 끝내고 저녁 7시쯤에 숙소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펜션 사장님 아주머니께서 안내를 해주시고 에어컨을 딱 키셨는데 거기서 바선생(바퀴벌레)가 툭 하고 떨어졌다..! (진짜 무서웠음) 근데 우리는 다리에 힘도 없고 너무너무 지쳐있는 상태라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충격과 공포에 쌓인채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잡으려고 출동 하시는데…! 바퀴벌레가 어찌나 빠른지 호다다닥 하고 침대 밑 프레임으로 들어가버렸다.. 결국 바퀴벌레를 잡지도 못하고 소동이 끝나버린 후 우리는 나름의 작전으로 이불을 모조리 가져와서 침대의 모든 구석공간을 막은 후 바로 잠에 들었다.

정말 평소같았다면 방을 바꿔달라 혹은 조치를 취했을 텐데, 이미 밤이 늦었고 정말 너무너무 피곤해서 빨리 씻고 자고싶은 마음에 극단의 선택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어이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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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의외로 꽤나 응원을 많이 받았다. 음식점에서 서비스로 응원한다며 사이다를 받은적도 있고, 올레길을 가시던 할머니 혹은 카페에서 만난 할아버지도 응원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이드신분들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부러움을 많이 표현하셨다. 한가지는 나이에 대한 부러움이였고, 하나는 친구의 존재에 대한 부러움이였다. 이 나이에서 밖에 하지 못할 행동이라고 표현을 해주셨고 요즘 애들은 이런 고생 안하려고 하는데 멋지다고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어떠한 관심사가 있어서 모인게 아닌 (ex. 동아리) 고등학교 친구끼리 마음이 맞아 이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것에 대해 부러워 해주셨다. 나도 이런말을 듣고 생각을 해보니 정말 이친구가 아니였으면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되게 고마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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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사실 고생 및 여행을 즐기고 싶었던것도 있지만, 이번 일주일동안 정말 깊은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퇴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었는데, 그런 생각 정리를 조금 하고 싶었다. 과연 지금 내가 걷고있는 이 길이 맞는걸까? 같은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 다리 및 종아리는 너무 아프고 발바닥은 첫날에 아프더니 갈수록 감각도 없어지고, 더운날에는 목이 뜨겁고 화상을 입은듯이 팔은 타들어가고 하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주일이 지나갔다. 물론 바다도 정말 많이 보고 컴퓨터를 열지 않아서 마음에 부담 혹은 스트레스가 정말 없었지만, 당시에 유일하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정이 너무 빡빡했던것도 큰 패착이였던것 같다. 하루에 35km? 솔직히 쉬울줄 알았다. 인간은 생각보다 나약했구나.. 만약 다음번에 또 제주도 한바퀴를 한다면, 혹은 누군가 내 블로그를 보며 비슷한 여정을 계획한다면 적어도 9박 10일로 일정을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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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부정적인것들만 나열한것 같지만 사실은 정말 재미있었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컴퓨터를 일주일동안 보지 않았던게 너무 좋았다. 군대 전역 후 정말 일주일동안 컴퓨터 없이 생활을 처음 해봤던것 같다. 입사를 한 이후에는 휴가를 써도 계속 slack을 확인하게 되고, 계속 걱정하게되어 제대로 휴식을 해본적이 없었을 뿐더러, 집에 가만히 누워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계속 이렇게 쉬어도 되나?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공부 혹은 개발을 해야될것 같은 스트레스에 쌓여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잡생각 하나 없이 걷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이렇게 개발이 아닌 딴것에 온전히 100%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태원아.. 같이 가줘서 정말 고맙다~ image